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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동 병산서원(Byeongsanswowon Confucian Academy)의 역사
안동 병산서원(安東 屛山書院)은 서애 류성룡의 학문과 업적을 기리기 위해 만든 경상북도 안동시 풍천면 병산리에 건립한 서원입니다. 1978년 3월 31일 사적 제260호에 지정되고, 2010년 7월 31일과 2019년 7월 10일 각각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되었습니다.
고종 5년(1868년)에 벌어진 흥선대원군의 서원 철폐령이 내렸을 때에도 가치 있는 47개 서원으로 지정되어 훼철(毁撤)되지 않고 보호되었습니다.
안동 병산서원은 대한민국 서원 중에서 유일하게 교육기관으로서의 명맥을 이어나가는 곳입니다. 후학들이 돈을 모아 비교적 교통이 편한 안동시 풍산읍에 풍산고등학교를 설립하여 공식적인 후신으로 삼고 있기 때문입니다.
병산서원의 출발은 풍악서당입니다. 고려 말 공민왕이 홍건적의 난을 피해 풍악서당을 지나가다, 난리 중에도 모여 공부하는 이들에게 감동받고 서책과 땅을 하사했다는 유서 깊은 서당입니다. 1572년(선조 5)에 서애 류성룡이 안동으로 옮겨 오면서부터 병산 서원의 역사가 시작되었습니다. 1607년 서애 류성룡이 타계하자 정경세 등 지방 유림의 공의로 선생의 학문과 덕행을 추모하기 위하여 1613년 광해군 5년에 존덕사(尊德祠)를 차건하고 위패를 봉안하였습니다. 1614년 병산서원으로 개칭 후 1863년에 '병산'이라는 사액을 받았고, 1871년(고종 8) 흥선대원군의 서원철폐령이 내렸을 때에도 훼철(毁撤)되지 않았으며, 유림 선현을 모시고 지방교육의 익일을 담당하여 많은 학자를 배출하였습니다. 일제강점기에 대대적인 보수가 행해졌으며 강당은 1921년에, 사당은 1937년 각각 다시 지어졌습니다. 매년 3월 중정과 9월 중정에 향사례를 지내고 있으며 서애 류성룡 선생의 문집을 비롯하여 각종 문헌 1,000여 종 3,000여 책이 소장되어 있습니다.
안동 병산서원(Byeongsanswowon Confucian Academy)의 공간탐험
만대루
서원의 앞쪽에 위치한 만대루는 병사원에서 가장 유명한 건물로 대강당 역할을 하던 곳으로
정면7칸, 측면 2칸의 만대루는 멀리서 보면 기둥 위에 지붕만 놓인, 그야말로 텅 빈 공간입니다. 누각을 지탱하는 기둥과 지붕으로 구성된 단순한 부재와 장식적 공간을 극도로 절제한 건축의 멋, 바닥 평면과 기둥 높이 그리고 지붕의 물매 등 비례가 눈 맛을 시원하게 합니다. 건물 안의 인공과 건물 밖의 자연이 하나가 된 공간입니다. 이 누마루는 유생물이 학문과 열정을 토오하며 우주 질서와 자연 순환을 탐구하던 성리학적 이상향의 공간이기도 하였습니다. 누각에 오르면 화산의 울창한 송림과 함께 낙동강과 병산의 아름다운 자연경관을 한눈에 바라볼 수 있습니다. 기둥 사이로 보이는 낙동강 풍경은 한 폭의 그림입니다. 자연 그대로의 기둥으로 구성된 아래층과는 대조적으로, 위층은 반듯하게 다듬은 누마루 기둥들이 정제된 공간을 형성하고 있습니다. 성리학적인 자연관과 조선 선비의 정신이 아래층, 위층 건물에 동시에 살아나 있습니다.
입교당
강학 공간의 중심 건물인 병산서원 입교당은 만대루 밑을 지나 돌계단을 오르면 전면 높은 석축단 위에 남향으로 배치되어 있습니다. 경상도 절집인 진입 공간이 누마루를 지나 대웅전 영역에 진입하는 방식과 똑같습니다. 이는 백제계 사찰 건축에서 보이는 누각을 끼고 돌아드는 방식과는 확연히 차이를 보이는데 산지 지형이 대부분인 경상도 지역에서 행했던 공간 활용의 좋은 예입니다. 입교당은 유생들이 배우고 원장과 강사가 기거하는 서원의 중심 공간입니다.
입교당 동쪽 대청 온돌방 명성재(明誠齋)는 빈칸 목을 퇴(退)로 개방하였으나, 서쪽 온돌방인 경의재(敬義齋) 앞은 좁은 툇마루를 내달아 언뜻 보면 대칭인 듯하지만 자세히 보면 비대칭의 구도로 조화를 이루도록 구성하였습니다. 대청의 전면은 창호나 벽을 설치하지 않고 개방하여 만대루의 트인 공간 사이로 아름다운 자연을 바라볼 수 있도록 하였습니다.
입교당의 앞마당은 가로 세로 12미터 내외의 마당입니다. 안동 사대부 종가의 ㅁ 자집 안마당을 보는 듯합니다. 이는 조선시대 사대부의 보편적 마감의 결과물이고 마당 동쪽에는 ‘동직재(動直齋)’, 서쪽에는 ‘장서실(藏書室)’이라 쓴 현판이 걸려 있습니다. 동·서재는 유생들의 기숙사로, 동재는 고학년, 서재는 신참 유생이 사용하는 곳입니다. 언뜻 보기에는 양쪽 입면이 비슷해 보이나 실은 엄격한 비대칭입니다. 문살의 칸수도 틀리고, 퇴의 개발도 다릅니다. 한국 미의 특징 중 하나인 비대칭의 대칭입니다.
병산서원은 입교당 앞뜰을 건물과 울타리 담으로 막아서 경내와 경외를 뚜렷이 구분하였지만, 만대루의 트인 공간을 통하여 시각적으로는 완전히 개방된 공간으로 꾸며 아름다운 자연경관을 서원 안으로 끌어들인 특이한 조원입니다.
이중환(李重煥)은 택리지(擇里志)에서 "산수가 없으면 감정을 순화하지 못하여 사람이 거칠어진다. 산수란 멀리서 대하면 사람으로 하여금 큰 포부를 갖게 하여 인물을 만들어 내고, 가까이 대하면 심지를 깨끗하게 하고 정신을 즐겁게 한다."라고 했습니다. 서원이 산수경치가 빼어난 곳에 위치한 것도 이런 연유에서 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