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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경주 불국사 삼층석탑(Three-story Stone Pagoda of Bulguksa Temple, Gyeongju) 역사

    경상북도 경주시 불국사 대웅전 앞뜰에 세워진 통일신라시대의 화강석 석탑(石塔)으로 경주 불국사가 창건된 9세기 중엽 무렵에 설립된 것으로 추정됩니다. 탑의 원래 명칭은 '석가여래상주설법탑(釋迦如來常住設法塔)'이며, 흔히 줄여서 '석가탑(Seokgatap Pagoda)'이라고도 부릅니다. 경주 불국사 삼층석탑 옆에는 경주 불국사 다보탑(Dabotap Pagoda)이 나란히 세워져 있는데, 이는 법화경(法華經)의 내용을 따른 것으로 '현재의 부처'인 석가여래(釋迦如來)와 '과거의 부처'인 다보볼( 多寶佛)이 나란히 있는 모습을 나타낸 것입니다. 심오한 문화 및 종교활동 시기에 문화적, 예술성 가치를 인정받아 1962년 12월 20일 국보로 지정되었습니다.

    이 석탑은 창건 이후 원형대로 잘 보존되어왔으나 1966년 9월 도굴범에 의한 훼손사건이 발생하여 손상됨에 따라 1966년 10월에 탑신부의 해체수리 작업이 시작되었고, 그해 12월에 보원되었습니다.

    경주 불국사 삼층석탑은 통일신라시대의 걸작이자 신라의 전형적인 석탑 양식을 잘 보여주는 대표 유적입니다. 화려한 조각 장식이 없어 단조로워 보일 수 있지만 각 부의 비례와 균형이 알맞아 안정되고 아름다운 느낌을 주며, 탑에서 발견된 '무구정광대다라니경(經)'을 포함한 사리장 엄구는 당시 신라 사회를 이해하는데 중요한 학술적 자료로 평가됐습니다.

     

    경주 불국사 삼층석탑(Three-story Stone Pagoda of Bulguksa Temple, Gyeongju) 설화

    경주 불국사 삼층석탑에는 '아사달과 아사녀'와 관련된 전설이 전해지고 있습니다. 백제의 석공이었던 아사달은 불국사 경내에 석탑을 만들기 위해 경주로 오게 되었습니다. 아사달이 신라로 떠난 지 여러 해가 지나도록 돌아오지 않자, 그의 아내인 아사녀는 남편을 만나기 위해 신라로 향했습니다. 아사녀가 경주 불국사에 도착했지만 아사달을 만날 수 없었고, 이를 안타깝게 여긴 한 스님이 불국사 가까이에 있는 연못에 기도를 드리면 탑이 완성되었을 때 탑의 그림자가 연못에 비칠 것이라는 이야기를 아사녀에게 전했다고 합니다. 이에 아사녀는 매일 연못을 들여다보며 기도하였으나 그림자는 비치지 않았고,  결국 그녀는 외로움을 견디지 못하고 연못에 빠져 스스로 목숨을 끊었습니다. 얼마 후 아사달이 탑을 완성하고 아사녀를 찾았지만 아사녀의 죽음으로 둘은 결국 만나지 못하였습니다. 훗날 사람들은 아사달이 만든 경주 불국사 삼층석탑을 무영탑( 無影塔, 그림자가 비치지 않는 탑)이라고 불렀다고 합니다.

     

    경주 불국사 삼층석탑(Three-story Stone Pagoda of Bulguksa Temple, Gyeongju) 구성과 양식

    화강암으로 만들어진 삼층석탑으로 높이는 10.4m이입니다. 기단부, 탑신부, 상륜부로 구성되어 있으며 탑 주변으로 연꽃무늬를 조각한 주춧돌 형태의 8개 탑구(塔區)가 놓아져 있습니다.

    기단부는 2단으로 제작되었으며, 각 면의 모서리와 가운데에는 우주와 탱주를 세우고, 우주와 탱주 사이에 면석을 끼워 넣어 기단부를 완성하였습니다. 

    탑신부는 3층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각 탑신의 모서리에는 기둥 모양인 우주가 새겨져 있습니다. 각 층의 탑신과 주붕돌(옥개석)이 하나의 돌로 되어 있고, 기단의 높이와 탑신이 서로 알맞게 조화되어 안정된 느낌과 아름다운 비례를 보여줍니다. 지붕돌(옥개석)의 하단에는 5개의 옥개받침이 조각되어 있으며, 처마의 네 귀퉁이는 하늘을 향해 살짝 들려져 있습니다.

    상륜부는 노반(露盤), 복발(覆鉢), 앙화(仰花)만이 남아있었으나, 1973년에 남원 실상사 동.서 삼층석탑(East and West Three-story Stone Pagodas of Silsangsa Temple, Namwon)의 상륜을 참고하여 복원하였습니다.

    이 석탑은 기단부나 탑신부에 아무런 조각이 없어 간결하고 장중하며, 각 부분의 비례가 아름다워 전체의 균형도 알맞고 극히 안정된 느낌을 주는 뛰어난 작품으로, 목조탑파 형식을 답습하였던 신라 초기의 석탑에서 발전하여 완전한 신라식 석탑의 정형(定型)을 확립하였습니다. 이후 건립되는 우리나라 석탑들은 대부분 이 석가탑을 모범으로 삼아 건립됐습니다.

    직선미와 균형감으로는 한국의 석탑 중에서 최고로 꼽히기도 합니다. 같은 불국사 안에 있는 다보탑과 비교해도 다보탑이 화려한 느낌을 주는 데에 비해 석가탑은 담백하면서 세련된 멋을 느낄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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